교육학자 프뢰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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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교육학자 프뢰벨

by ley레이 2024.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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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뢰벨의 일생

프뢰벨(Friedrich Fro bel)은 독일의 교사이자 교육학자이다. 그는 아동에 대한 이해와 유아교육의 상당한 부분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또한 페스탈로치의 사상을 이어받아 그만의 창의적인 교육철학과 유아교육 이론을 계발하였다. 대한민국의 유아 교육 기업 중 프뢰벨의 이름을 따온 교육출판사가 있어서 더 유명한 듯하다. 그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의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와 형제들의 돌봄 속에서 자랐다. 그는 10살 정도 되던 해에 외숙부에게 양자로 입양되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을 접할 기회가 많아서 자연의 원리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과 자연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그의 이러한 사색과 생각 깊음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초등학교를 그만두고 측량사였던 벗 씨의 조교가 되었다. 그는 이때부터 듀링겐의 숲속에서 깊은 사색과 통찰을 하였다. 프뢰벨은 프리드리히 슐레겔 등 낭만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프뢰벨은 페스탈로치를 만나게 되면서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교육과 철학이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하여 교육의 기초를 만들었다. 프뢰벨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이기에 자연의 원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알고 싶어하였다. 프뢰벨은 학교를 개설하기로 하고 일반 독일 교육원에서 그의 이론을 적용해 보고자 하였다. 그는 유아교육에 관심을 가지며 어린이는 놀이를 통하여 발달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창의적인 놀이를 키우고 놀이 도구를 바르게 줘야 한다고 믿었다. 그 후 장난감 중심의 유아교육에 대해 발표하여 프뢰벨이 유명해졌다. 유치원을 설립하였고 많은 시민의 관심을 끌었다.

교육사상 

프뢰벨은 모든 것에 변치 않는 규칙이 있으며 그 규칙이 모든 것을 움직이고 작용하게 한다고 설명한다. 자연 또한 큰 유기체고 규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현상과 인간 현상을 연결하고 통일시켰다. 그는 사람의 본성을 생활 속에서 나타내는 것이 사람의 과제라고 보았다.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본성을 밖으로 표출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하고 과제를 이룩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 어린이들이 내면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도록 자연스러운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교육 활동은 아이가 내면적으로 준비가 되었을 때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사람의 발달 순서를 영아기, 유아기, 소년기, 성인기의 4가지 단계로 구분하였고 단계마다 이루어야 할 목표와 발달 과제가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 중에서 영아기와 유아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영아기 때는 청각, 시각, 촉각 등 감각 능력과 신체의 활동 능력을 발전시킨다. 유아기는 주변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라고 보았다. 유아기부터 규칙과 질서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했다. 유아기 때부터 내면을 표현할 수 있으므로 정신적인 보육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언어, 노래, 동작, 놀이 등의 표현활동으로 자아의식을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교육자는 수동적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아동을 관찰하고 보호하며 필요할 때 개입할 수 있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한다. 프뢰벨은 또한 노동의 중요성도 강조하였다. 아동의 활동을 노작으로 보고 생산을 중요시하기도 하였다. 프뢰벨은 아이의 근본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로 인하여 능동적이지 않은 교육을 지향했다. 예를 들어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 식물의 고유성을 존중하여 환경을 고려하고 물과 비료를 주고, 가지치기하는 것처럼 교육도 그렇다고 보았다. 아이의 본성에 따라 환경을 맞춤형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치원의 개념도 이와 같은 교육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최초의 유치원이 프뢰벨에 의해 독일에서 만들어졌다. 오늘날에도 많은 나라에서 초등교육의 한 부분으로 유치원 교육과정을 수용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유치원 교육을 의무로 여기지 않지만 그러한 방안도 생각하는 중이다. 프뢰벨의 유아교육 운동으로 설립된 유치원 교육은 1837년 처음 생겨났다. 독일은 이후에 유치원을 반대하기도 하였으나 뷰로우 같은 사람의 지지를 입어 다시 생겨났다. 1873년경에는 독일의 프뢰벨 연맹이 만들어졌다. 프뢰벨은 사람이 성장할 때 연속적으로 성장한다고 말하였다. 아이에게 공감해 주는 것을 중요시하고 조기교육은 지양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유치원에서 교육과정을 계획할 때 아이가 노작 활동을 많이 할 수 있도록 고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유치원에서 놀이 활동, 체험 활동, 생태 체험 등을 중요시하는 것은 프뢰벨의 이러한 교육 이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뢰벨이 영향을 받았던 페스탈로치의 사상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Johann Geinrich Pestalozi)는 스위스의 교육학자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아가페적 사랑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하나의 사람으로 존중해 주려는 노력이 뒷받침되었다. 그는 사랑이 많고 따뜻한 가족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가정에서의 인성 교육을 중심으로 생각하였다. 자녀를 기르는 기쁨을 사람의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가난을 오히려 감사할 수 있는 계기로 여기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와 더불어 주변 사람과 나라를 위해서 건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인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교육이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시대 상황을 비추어보았을 때 그 당시 사람들은 아이의 고유한 특성을 존중해 주지 않았었는데 페스탈로치는 그러한 사람들의 교육관을 변화시켰다. 또한 교육할 때 교과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다양한 저서를 남겼고 교육에 대한 이론을 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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